재즈풍 보컬을 통해 한국형 팝을 선도했던 가수 현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가수 현미는 지난 1957년부터 현시스터즈로 데뷔한 이후 1962년 ‘밤안개’가 수록된 1집 앨범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세월이 흘러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 인데요.
가수 현미는 지난 4월 4일 오전 9시 37분경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쓰러진 상태로 팬클럽 회장에게 발견되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가수 현미의 사망 사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아직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으며, 경찰은 유족, 병원기록 등을 통해 현재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평소 현미의 건강은 어땠을까요?
경찰에서는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가수 현미에게 지병이 있었는지 병원 치료 내역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지병이 있으신 건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도 지인과 식사를 하셨다더라’면서 ‘왜 사망하셨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텐데’라고 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이번 소식으로 가수 현미 프로필 및 가족 관계 등에 대한 관심도 재조명 되고 있는데요. 가수 현미의 고향은 평안남도 강동군으로, 8남매 중 셋째로 1.4 후퇴 때 부모, 6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당시에 평양의 집이 망가지면서 조부모댁에 두 여동생이 맡겨졌고, 1.4후퇴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북에 남아 있다고 하죠.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낸 한 여가수 대신에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드물게 있었던 여대생 가수라는 메리트를 살려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했었고 그 중에서도 센터를 담당했었죠.
그때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으로 음반을 만들어줬고 그때부터 현미는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주로 이봉조 작곡가의 노래들을 불렀고, 대표곡으로는 밤안개, 내 사랑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무작정 좋았어요, 애인, 몽땅 내 사랑, 바람, 별, 왜 사느냐고 묻거든, 아내, 내 걱정은 하지마 등이 있습니다. 한편 가수 현미 가족관계로는 슬하에 두 아들이 있는데, 특히 아들 이영곤의 경우 ‘고니’ 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두 아들 모두 작곡가 이봉조의 소생이라고 하죠.
그 외에도 가수 현미 가족으로는 조카 노사연, 노사봉, 그리고 한상진이 있습니다. 한편 오랜세월 인기 가수로 활동해 왔기에 가수 현미 재산에 대한 관심도 상당한데, 현미는 약 3년전 방송을 통해 집 사기와 7억 상당의 보석을 도둑맞으면서 전 재산을 잃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6년 전 집 사기를 당할 때 강도가 들어와서 금고 채로 가져갔다. 그때 7억 정도 되었다. 지금은 10억 넘을 거다. 그래서 내가 빈털터리가 됐다. 집도 없어지고 보석도 없어지고 남은건 목소리 밖에 없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치매 증세가 심했다. 우리 애들 키워준 엄마의 언니하고 엄마가 칼을 들고 싸우더라. 집에 들어가는게 너무 무서워서 집을 내놓았다. 근데 집을 팔아주겠다는 사람이 잠적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참고로 가수 현미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네요.